지불 수단
맑스는 화폐의 기능에는 이외에도 ‘지불 수단’의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상품 유통의 발전과 더불어, 상품의 양도를 상품 가격의 실현과 시간적으로 분리시키는 사정들이 발생한다. [...] 어쨌든 구매자는 그 상품의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그 상품을 사는 것이다. [...] 판매자는 채권자로 되며 구매자는 채무자로 된다. 이 경우 상품의 변태 또는 상품의 가치 형태의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에 화폐도 다른 하나의 기능을 획득한다.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 된다. (1권149/172)”
상품을 구매하면서 이와 동시에 화폐를 교환하게 되면 화폐는 유통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상품을 외상으로 구매할 경우에는 구매자가 그 상품을 양도받기는 하였지만, 그 대가로 화폐를 당장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나중에 지급하게 된다. 이처럼 상품의 양도와 화폐의 지급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때 화폐는 ‘지불 수단’(Zahlungsmittel)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수표나 어음과 같은 신용 화폐의 사용이 확대되면, 화폐의 ‘지불 수단’ 기능도 더욱 확대된다. 화폐가 지불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게 되면, 채무를 갚기 위한 화폐의 축적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이전에는 축장(퇴장) 화폐가 주로 독립적인 부의 축재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함께 축장(퇴장) 화폐는 외상을 갚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불 수단의 준비금 성격을 띠게 된다.
지불 수단으로서 화폐에 내재하는 모순 화폐 공황의 문제
맑스는 지불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이러한 화폐에는 하나의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불 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에는 하나의 내재적 모순이 있다. 여러 지불이 상쇄되는 한,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계산 화폐 또는 가치 척도로서 오직 관념적으로 기능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화폐는 [...] 사회적 노동의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 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모순은 산업, 상업의 공황 중 화폐 공황으로 알려진 국면에서 폭발한다. 이 화폐 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지불 결제의 인위적 조직이 충분히 발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1권151-2/175-6)”
상품의 양도와 화폐의 지불 사이에 일정한 시간적 간격이 발생하면, 이때 상품을 양도한 사람은 채권자가 되고 아직 화폐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상품 교환이 활발해지면 이러한 외상 거래는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만약 어떤 채무자가 파산으로 인해서 제대로 외상을 갚지 못하게 되면 연쇄적인 지불 불능 사태가 발생한다. 이것을 ‘화폐 공황’이라고 한다. 이것은 지불 수단으로서 화폐가, 가치 척도로서 관념적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환가치를 지닌 일반적 상품으로서도 기능한다는 모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화폐의 종류
맑스는 화폐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화폐 종류도 금, 주화, 지폐, 신용 화폐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한다고 말한다.
금과 금 주화
화폐의 여러 형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금 또는 금 주화라고 할 수 있다.
“화폐는 유통 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의해 주화의 형태를 취한다. 상품의 가격, 즉 화폐 명칭이 머리 속에서 대표하고 있는 금의 중량은 유통 과정에서는 그것과 동일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금 조각 또는 주화로서 상품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1권138/159)”
역사적으로 볼 때 화폐로 가장 널리 쓰였던 물건은 금이다. 금은 분할이나 보관, 운반이 편리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화폐로 널리 사용되었다. 화폐로 사용되는 금은 교환의 편리성을 위해서‘주화’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금 주화’와 ‘금 덩어리’는 외형상 구별되지만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서로 그 형태가 전환될 수 있는 관계에 있다.
금이 아닌 금속 주화
금 또는 금 주화를 대신하여 등장한 화폐 형태는 금이 아닌 다른 금속 재료로 만든 ‘금속 주화’이다.
“만약 화폐의 유통 그 자체가 주화의 실질적 무게를 그 법정 무게로부터 분리시키고, 기능으로서의 주화를 금속으로서의 주화와 분리시킨다면, 화폐 유통에는 벌써 금속 화폐를 다른 재료로 만든 토큰, 즉 주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 (1권140/161)”
‘금 주화’는 사용되는 과정에서 마모 등으로 인해 금 주화에 표기된 ‘법정 무게’와 그 주화의 ‘실질적 무게’가 서로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화폐로서의 ‘금 주화’와 금속으로서의 ‘금 덩어리’가 서로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금주화’는 가격을 표시하는 상징적 기능만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더 나아가 ‘금 주화’ 대신에 은이나 동, 철과 같은 다른 금속을 사용하여 동일한 가격을 표시하는 ‘금속 주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지폐
금속 주화를 대신하여 등장한 화폐 형태는 ‘지폐’이다.
“금의 주화로서의 기능은 금의 금속적 가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물건, 예를 들면 지폐가 금을 대신해 주화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주화의 순전히 상징적인 성격은 금속 토큰에서는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지만, 지폐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1권140/162)”
화폐의 형태가 ‘금 주화’에서 금이 아닌 ‘금속 주화’로 바뀌면서, 화폐에 표기된 가격은 화폐 자체의 실질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단지 상징적 가격만을 표시하게 되었다. 즉 화폐의 상징적 기능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이러한 화폐의 상징적 기능은 ‘지폐’ 형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1파운드의 지폐’는 ‘1파운드의 금’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지만 ‘1파운드의 지폐’ 그 자체는 실제로 그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지폐는 단지 상징적인 가치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신용 화폐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신용 제도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이제 지폐뿐만 아니라 ‘신용 화폐’도 널리 사용된다.
“신용 화폐는 단순 상품 유통의 맥락에서는 아직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관계들을 전제로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진정한 지폐가 유통 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면, 신용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그 자연 발생적 근원을 가지고 있다. (1권141/162)”
화폐의 형태는 ‘금 주화’, ‘금속 주화’, ‘지폐’ 등을 거쳐서 이제‘신용 화폐’ 형태로 발달하게 된다. 여기서 신용 화폐란 어음이나 수표 등을 가리킨다. 지폐가 상품의 판매와 구매를 매개하면서 주로 유통 기능을 담당한다면, 신용 화폐는 주로 ‘지불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상품을 구매하면서 어음이나 수표와 같은 신용 화폐를 지급하게 되면, 이것은 그 상품에 대한 대가를 바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어음이나 수표를 결제할 때 지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불 수단으로서의 신용 화폐는 화폐의 상징적 기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품의 물신적 성격
맑스는 노동 생산물이 상품 형태, 특히 화폐 형태를 취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독자적인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서 이것을 가리켜서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상품 형태의 신비성은, 상품 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 생산물 자체의 물질적 성격, 즉 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적 속성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chismus)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 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 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1권86-7/93)”
노동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게 되면서 그것은 신비한‘물신적 성격’(物神的 性格, Fetischcharakter)을 갖게 된다. 상품의 ‘물신성’ 즉 ‘물신적 성격’이란 상품이 인간 노동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하나의 독자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즉 상품 자체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속성으로 인해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독자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상품 교환을 둘러싼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은폐되고, 그 대신에 상품들의 힘에 의해 상품들 사이에 독자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상품의 물신적 성격의 발생 원인
맑스는 이러한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노동 생산물이 단순히 동질의 인간 노동의 물질적 외피이기 때문에 서로 가치로서 관계를 맺는다고 보지 않고, 그 반대로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그들의 상이한 생산물을 교환에서 서로 가치로 등치함으로써 그들의 상이한 노동을 인간 노
동으로 동등시하는 것이다. (1권88/95)”
교환 관계에서 상품들 사이에 일정한 가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그 상품들 속에 인간의 노동, 특히 추상적 인간 노동이 공통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상품들이 서로 가치 관계를 맺기 때문에 여기서 인간 노동의 동질성이 확보된다고 본다. 동질의 인간 노동이 상품들 사이의 가치 관계를 형성시키는 바탕이 아니라, 상품들 사이의 가치 관계가 동질의 인간 노동을 형성시키는 바탕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맑스는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 형성된다고 비판한다.
화폐의 물신적 성격
맑스는 화폐의 물신적 성격도 이러한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이 상품체, 즉 금과 은은 지하로부터 나오자마자 모든 인간 노동의 직접적 화신으로 된다. [...] 그러므로 화폐 물신(物神)의 수수께끼는 상품 물신의 수수께끼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1권107-8/119)”
상품의 물신적 성격은 화폐 형태에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된다. 상품의 특수한 형태인 화폐는 그 자체의 독특한 자연적 속성으로 인해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독자적인 힘을 가진물건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상품의 경우보다 더욱 심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상품의 물신적 성격처럼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착각에 불과하다.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신의 가치를 금과 같은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화폐가 되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상품에 내재하는 모순
맑스는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대립이나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면서,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발생하는 여러문제들의 단초가 된다고 말한다.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과 모순이 내재한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모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계산된다는 모순, 사물의 인격화와 인격의 사물화 사이의 대립.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한 상품의 변태의 대립적인 국면들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운동 형태를 전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들은 공황의 가능성을, 그러나 오직 가능성만을 암시하고 있다. (1권147/146)”
상품에는 구체적인 유용성을 지닌 ‘사용가치’와 상품 교환의 토대가 되는 ‘(교환)가치’라는 대립적 요소가 동시에 들어있다. 이것은 특수하면서도 사적인 ‘구체적 유용 노동’과 일반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추상적 인간 노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상품에서는 전자가 후자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갈등이나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상품의‘물신적 성격’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이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독립적인 힘으로서 기능하는 반면에 인격은 오히려 사물의 지위로 전락하기도 한다. 맑스는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공황의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공황이 이러한 대립이나 모순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황이 실제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이외에도 여러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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