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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

자본론 제4독일어판 서문 [18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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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독어판 서문 [1890]

4판에서 나는 본문과 주를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이 과업을 수행했는가를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불어판과 맑스 친필 각서를 대조한 다음 불어판

에서 약간의 부분을 취해 독어판 본문에 새로 보충했다.

그리고 또 나는 불어판과 영어판의 예에 따라 광산노동자

에 관한 긴 주를 본문에 추가했다. 기타의 작은 변경들을 순

전히 기술적 성격을 띤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약간의 해설적인 주를 보충했다. 이런 보충적 주는 모두 괄호 속

에 넣고 내 성명의 약자를 기입했다.

얼마 전에 영어판이 나왔기 때문에 수많은 인용문을 완전히 교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영어판을 위해 맑스의 막내 딸 엘리너가 인

용 전체를 원문과 대조해 준 결과 인용문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영어

인용문이 영어판에서는 독어판의 재번역이 아니고 영어 원문 그대로다.

그러므로 나는 제4판에서는 이 영어판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러 곳에서 사소한 부정확한 점이 발견되었다. 인용 쪽수의 잘못이 있었

는데 일부는 노트에서 옮겨 쓸 때 잘못 쓴 데서 일부는 판을 세 번 거듭

하는 동안 쌓인 인쇄 잘못에서 생긴 것이었다. 인용부호 또는 생략점의

위치가 잘못된 곳이 있었는데 이것은 발췌장에서 대량으로 인용할 때

불가피하게 생긴 착오였다. 또한 그리 적절하지 못한 번역어가 여기저기

있었다. 특히 맑스가 아직 영어를 몰라 경제학 영어서적들을 불어

번역판으로 읽고 있을 때인 1843~1845년 파리에서 작성한 낡은 노트로

부터 인용되어 이중 번역 때문에 인용문의 의미가 약간 달라진 곳(예컨

대 스튜어트 유어 따위의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나는 영어 원문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사소한 부정확성과

부주의는 있었다. 그러나 만약 독자들이 이 제4판을 이전 판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 모든 힘 드는 교정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금도 변경되

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인용문만이 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리처드 존스로부터 인용한 것

이었다. 아마도 맑스가 책의 이름을 잘못 쓴 것 같다.

(나중에 존스로부터의 인용임이 밝혀졌다.) 기타의 인용문은 모두 올바르게

인용되었으면 현재와 같은 정확한 형태를 갖춤으로써 인용의 정확성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의 오랜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맑스가 인용한 문장의 정확성이 의심받았던 경우

는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맑스가 죽은 뒤에도 이것이 문제로

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모르는 체 그대로 넘길 수가 없

.

187237일 독일 공장주협회 기관지인 베를린의 [콘코르디아]

칼 맑스는 어떻게 인용하는가” 하는 하나의 익명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도덕적으로 분개해 무례한 말들을 한껏 써가면서

1863416일의 글래드스턴 예산연설로부터 맑스가 인용한 것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업에도 인용되었고 [자본

])은 위조라고 주장했다. 즉 맑스가

인용한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로 재산소유자계

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문구는 [헨서드(의회 의사록)의 준관보

적 속기록에는 한 마디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구는 글래드스

턴의 연설에는 아무데도 없다. 그 연설은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굵은 활자로) “맑스는 이 문장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위

조 첨가했다.”

그 해 5월에 [콘코르디아]의 이 해당 잡지를 받은 맑스는 이 익명

의 필자에서 [폴크스슈타를] 61일호에서 답변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신문기사로부터 인용했는가를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먼저 두 개의

영국 간행물에 있는 위와 같은 의미의 인용문을 지적한 다음 [더 타임

]의 보도를 인용하는 데 국한했다. [더 타임즈]에 따르면 글래드스턴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부의 현상이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의 권력의

증대가 오직 부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그것을 불안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주시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

을 수 없다. 이 현상은 노동자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확하다고 생각되는 자료에 따르면 내가 방금 말한 부의 증대는 전적

으로 재산소유자계급에게만 국한되고 있다.”

여기서 글래드스턴은 만약 그렇다면 유감천만인데 사실상 바로 그

렇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

로 재산소유자계급에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준

관보적인 [핸서드]에 관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래드스텐은 나중에 그 연설문을 수정하여 영국 대장성 장관의 말

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날 수 있는 그 단락을 삭제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국 의회의 전통적인 관례이지 결코 베벨을 공격하기 위해 꼬마 라스커

가 만들어낸 발명(독일 의회에서 라스커가 베벨에게 행한 자기의 욕설을 속기록

에서 빼도록 한 사건)은 아니다.

익명의 필자는 더욱 화를 냈다. 74[콘코르디아]의 답변에서 그

는 모든 이차적 자료는 젖혀놓은 채, 의회 연설은 속기록에서 인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 [더 타임

]의 보도(이 속에는 ‘위조’된 문구가 들어있다)[핸서드]의 보도(

기에는 이 문구가 없다)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며 또 [더 타임즈

]의 보도는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 중의 그 악명 높은 단락과는 정반

대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더 타임즈]의 보

도에는 이 이른바 ‘정반대’의 것과 아울러 바로 그 ‘악명 높은 단락’도 분

명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모

든 것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필자는 자기가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과 오

직 새로운 탈출구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뻔뻔스러운 거짓’으로 가득찬 자기의 논문에서 ‘악의’, ‘부정적’,

허위주장’, ’이 허위인용’, ’뻔뻔스러운 거짓’, ‘완전히 위조된 인용’,’

런 위조’, ’단순히 수치스러운’ 따위의 극단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논쟁점을 슬며시 다른 분야로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글래드스턴 말의 내용에 어떤 의의를 부여해야 하는가를 별개의

논문에서 설명’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혀 보잘 것없는 그 견해가 마치

조금이라도 그 문제(부와 권력의 불균등 분해)와 관계가 있는 듯이 이 별

개의 논문은 711일의 [콘코르디아]에 실렸다.

맑스는 이에 대해 87일의 [폴크슈타트]에서 다시 한 번 답변

했는데 이번에는 해당 단락을 1863417일의 [모닝 스타][모닝

에드버타이저]로부터도 인용했다. 이 두 신문에 따르면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가 실제로 ‘부

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불안하

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런 증대는 완전히 재산소유자계급

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라고 이와 같이 이 기사들에도 맑스가 ‘위조

첨가’했다는 문구가 문자 그대로 들어있다. 더 나아가 맑스는 그 다

음 날 아침 서로 독립적으로 나온 세 개의 신문기사가 그 점에서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그 문장이 잘 알

려진 ‘관례’(연설자가 검열하는 관례)에 따라 [핸서드]의 의사록에서 실려

있지 않다는 것과 글래드스턴은 그것을 맑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 뒤 슬쩍 삭제했다”는 것을 [더 타임즈][핸서드]의 원문들을 비교

함으로써 다시 한번 확증했다. 끝으로 맑스는 익명의 필자를 더 이

상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의 필자도 더 할 말이 없었던지

적어도 맑스는 그 뒤 [콘코르디아]를 받지 않았다.

이로써 사건은 종말을 짓고 잊혀진 것같이 보였다. 하기는 그 뒤 케임

브리지대학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맑스는 [자본론]에서 언

어도단의 문필상 죄악을 범했다는 정체불명의 풍문이 한두 차례 전해온

적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확실한 것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

었다. 그러던 차에 1883119일 즉 맑스가 죽은 뒤 8개월이 지

[더 타임즈]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의 테일러라는 사람의 편지

가 실렸다. 매우 온전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그 편지에

서 전해 뜻밖에도 케임브리지의 풍문에 관해서 뿐 아니라 [콘코르디아]

의 익명 필자에 관해서도 말했다.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주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글래드스턴의 연설로부터 인용한 것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선언에 넣도록 했던 맑스의 악의를 브랜

타노 교수(당시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 있었고 현재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 있다)가 비로소 폭로…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인용문을

변호하려고 시도한 … 칼 맑스는 브렌타노가 한 번 멋있게 치자

넘어졌으나 그래도 뱃심 좋게 주장하기를 글래드스턴은 18634

17일의 [더 타임즈]에 실린 자기의 연설 보도를 [핸서드]에 싣기 전에

뜯어고쳐 영국 대장성 장관의 말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날 수 있는’ 단

락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브렌타노가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

고 인용함으로써 글랜드스턴의 말이 가지게 된 그런 의미를 절대로 포

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 타임즈][핸서드]의 보도가 일치한

다는 것을 원문을 세밀히 대조해 증명했을 때 맑스는 ‘시간이 없

다’는 구실로 물러나 버렸던 것이다.”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러했다. 그리고 [콘코르디아]에서 브렌타노가

제기한 익명 논쟁은 케임브리지 생산협동조합원의 관념에 그처럼 휘황하

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독일 공장주협회의 세인트 조직인 브렌타노가 칼

을 휘둘러 ‘멋있게 한 번 치니’, 저승의 용 맑스가 그만 ‘넘어져’ 그

의 발밑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리오스토적 전쟁장면은 우리의 세인트 조지의 탈출

을 숨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위조 첨가된 것’, ‘위조’가 아니라 오직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고

인용한 것’이다. 문제 전체는 어느새 다른 분야로 옮아갔는데 세인트 조

지와 케임브리지의 방패막이는 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너 맑스는 [더 타임즈]가 자기의 편지를 게재하는 것을 거절

했으므로 월간잡지 [투데이](18842월호)에서 테일러에게 답변했다.

이 답변에서 엘리너는 논쟁을 일찍이 문제로 되었던 단 한 점 즉 맑스

가 문제의 문장을 ‘위조 첨가’했는가 아니했는가에 집중시켰다. 테일러

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그의 의견에 따른면 맑스와 브

렌티노 사이의 논쟁에서는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어떤 한 문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인용의 의도가 글래드스턴 말의 진의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있었는가 그것을 왜곡하는데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비하면 매우 부차

적인 의의밖에 가지지 못했다.”

그 다음 테일러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실제로 모순되는 말을 내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만약 문맥을 정당하게 다시 말

해 자유주의적-글래드스턴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문맥은 글래드스턴

이 말하기를 원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투데이] 18843

월호) 여기서 가장 우스운 것은 케임브리지의 소인이 이제는 연설을

[핸서드]로부터 인용하지 않고-익명 필자 브렌티노의 의견에 따르면 그

렇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그 보도가 “조잡하지 않을 수 없

.”고 브렌타노가 특징지은 [더 타임즈]로부터 열심히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핸서드]에는 이 시끄러운 문장이 들어있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엘리너 맑스가 [투데이]의 같은 호에서 테일러의 논의를 부수어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테일러가 1872년의

논쟁을 읽었다면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없던 것을 ‘위조 첨

가’할 뿐 아니라 있던 것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그가 그 논쟁을

읽지 않았다면 발언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맑스가 ‘위

조 첨가’했다는 자기 벗 브렌타노의 고발을 감히 지지하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반대로 이제는 맑스가 위조 첨가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문장은 창립선언 제5

쪽에 이른바 ‘위조 첨가’되었다는 문장보다 몇 줄 앞에 인용되어 있다.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있는 ‘모순’에 관해 말한다면 ‘1863년과 1864

년의 글래드스턴의 예산인 제안연설에 나타난 끊임없는 놀라운 모순들’

[자본론]에서 지적한 사람이 바로 맑스가 아

니고 누구인가 ? 그는 다만 이 모순들을 테일러식으로 자유주의적 자기만

족감 속에 해소시키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엘리너 맑스는 답

변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맑스는 인용할 가치 있는 것을 삭제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위조 첨가’하지 않았다. 그는 글래드스턴이 연설에서는 확실히 말했

으나 어쩐 일인지 [핸서드]의 기록에는 탈락된 한 문장을 부활시켜 망

각에서 구해냈던 것이다.”

이것으로 새들리 테일러도 진정했다. 20년 동안 두 큰 나라에 걸쳐 진

행된 교수들의 공동 모의 전체를 부수어버린 결과 누구도 맑스의 문

필적 양심을 비방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이제부터 브렌타노는 [핸서드]

에는 절대로 과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문헌적 전투보고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1890625

런던

프리드리히 엥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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