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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과 은퇴 사이 그리고 이후

아버지 생각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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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50대 중반

 

이 나이가 되면 퇴직과 은퇴 등으로 새로운 세상과 사회를 만나게 되면서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된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같기도 하고 내가 글 쓰는 재주가 별로 없어 두서없는 글이 될 것 같아 몇 부로 나누어 적어 볼까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고 내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여 그 만큼 소중한 글로 남을 것 같다

물론, 나의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이 세상에 의미없이 주인없이 떠 도는 글이나 말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에

그런 글들 중에 하나가 되더라도 이렇게 세상에 남기고 혹시라고 잃어지지 않는다면

그 만큼의 생명력있는 삶 처럼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춘기때 부터 지금까지 자주 또는 빈번하고 생각해 본 것이 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것이나 나이가 들수록 생각하는 것이 죽음일 것이다

 

그 죽음 중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난다.

죽음이란 고통과 괴로움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로 부터 강제로 잃어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가장 큰 것 같다

 

뇌경색과 치매 등의 합병으로 임종이 왔을때

그 떄의 아버지의 얼굴 빛과 눈망울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고통인지 아쉬움인지는 모르겠으니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에 맺친 그 눈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부모의 마지막 임종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고통이기도 하다

 

자식으로서 그 마음과 생각으로 난 아무런 느낌도 슬픔도 느낄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시간은 8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는 정말 생생하게 기억하고 또 기억난다

 

지금 내 나이 50때 중반인데 나와 같은 나이었을때의 아버지와 그 아들인 나를 생각해 본다

그 때 내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군대를 갔다온 이후 대학을 다니고 있을때인 것으로 나이를 역으로 계산할 수 있다

 

그 당시 나의 아버지는 백수였다.

내가 고3 졸업을 앞둔 시점에 노조일로 관리자와 다투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기억은 잦은 아버지와 어머지 사이의 돈과 관련한 경제적 문제로 다툰 것으로 안다

작은방에 있으면 큰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듣리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경제적인 사정도 모르고 학력고사시험을 쳤고 그 결과로 대학에 합격은 했다

합격을 확인하는 ARS 전화 이후 부모님은 등록금이 없다는 것으로 또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철이 없어 무슨 걱정 같은 것은 하지도 않고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합격하는 날, 대학교 게시판을 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등록금 걱정이 없는 장학생으로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내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는 제대로 가정에 경제적인 여유를 주지 못하는 아버지로 기억하고는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아버지의 개인적인 사정도 모르고 난 매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부족한 부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파트 타임으로 일한 돈으로 채워가면 대학을 졸업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우리 형편에 대학원은 안 된다는" 무엇의 압력으로 H자동차에 특채로 입사하게 되었다

당행스럽게다

그 때의 졸업이나 H자동차에 입사할때에도 아버지에 대한 지원 부분은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간간히 알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단기간 노가다를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머니는 마트에서 김치 만드는 것으로 일을 한다는 것으로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에는 실직자 아닌 실직자로 기억하는 아버지을 뿐이다

 

그런 나의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20년이상 배테랑이였지만 결국에는 기능공이였으니

그런 조선소 기능공이 되기 이전에는 조직폭력배 중의 하나였다고

자신의 과거를 늘 이야기해 주기도 하면서 절대 맞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이런 아버지와 나에게 한명 아들이고 나의 형이 한명 더 있었으나

내가 고1 때 죽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강제로 장남이면서 외동 아들이 되었다

기대도 한 몸에 원망도 한 몸에 ~~~ 받는 아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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