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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시와 수필 한 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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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큰 울림을 준 책과 내용으로 남을 것 같은 내용의 동영상과 책을 소개하며

그 내용의 자막을 아래와 같이 문자로 남겨 놓고자 한다.

 

제목 : [라퓨타도서관📚#019]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시련은 인생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7oAGxokNurc 

 

빅터 프랭클린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책은 단순한 체험 수기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인생을 대하는 시선을 바꿔
준 인생 책이기도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는 말처럼 죽기 전에
꼭 한번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마치 수용 의 확장판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공허한
말들을 듣습니다 다 잘될 거야 힘내
꿈을 잃지마 같은 말들 말이죠 터널
같은 시련에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라면
주변에서 그 터널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지만
그것이 큰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통고하는 터널이 중간쯤인
아니면 터널의 입구인 알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책을 모두 인용할 수 없지만 다섯
개의 포인트로 여러분들과 소통을
하려고 합니다이 책은 절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과이
책을 나누는 이유입니다 

수용소에서 있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용소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제서 석방 되는지를 몰랐다
실제로 얼마나 오래 수감될 그 기간은
불확실했다 것도 아니었다 그곳은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다 그래서
수용소의 삶은 결말에 대한 불확실함에
연속이다 이런 삶이 정말 끝날 것인지
만일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라틴어 피니라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하는 삶을 포기한다 그래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울 수도
없다 수감자들 역시 기한 시간 감각을
경험한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그런
생존의 상태를 경험한다 그래서 하루에
일과가 시작되면 토로 나가는 행진은
마치 자기 자신의 장례식 행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수이 않는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 그로
인해서 철조망 밖에 있는 것은 마치
손에 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상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갇히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현실의 의미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들은 분명히 있다 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의 상황이 자신을
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 없는 그 어떤 것으로
한다 그들은을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없는 것이 된다 심지어는 실
죽음에서도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를가 수 있다 평범한 환경이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평범하고 의욕이 없는
사람들에게 비스마르크가 있던이 말을
들려주고 다 인생이란 의에 있것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다 빅터 프랭클이 써내려가는 죽음의
수용소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는 특정한 공간만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부여된 수감번호 이것이
그들의 정성이고 수 인정 유일한
가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수
번호를 붙이고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빅터 프랭크의 글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는 우리에게
추상적이고 귀에 듣기 좋은 마디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직접 경험했고
그것을 극복해 냈던 과정을 우리에게
생생히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의 수소 같은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신다면 빅 의 글은 그 누구의
글보다 큰 위로를 줄 겁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500명의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며칠 밤과 낮을 계속해서
달렸다 열차 한 칸에 80명씩 타고
있었다 열찬이 너무 꽉 차서 제대로
앉을 수조차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모두이 기차가 군수 공장으로
가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곳이라면
강제노역이 뭐든 여하튼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기차가
덜컹거리며 종착역에 도착했다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슈비츠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이
아우슈비치 동이 트자 거대한 수용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겹겹이서
있는 철조망 담장 감시탑 그리고 질질
끌려가는 초라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행렬 고함소리와 호르라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것만 해도 그나마
괜찮았다 그 이후로 훨씬 더 끔찍한
공포를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던 화물칸은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의해서 깨졌다
화물칸 차문이 열리자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머리를
깎았지만 영양 상태는 좋아 보였다
그들이 말로만 들었던
카들이 우리는 짐을 열차에 두고
플랫폼에 내렸다 군의관 장교는
우리들을 지켜보았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오른손 집계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리며 사람들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분류했다 이때이 분류가 얼마나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침내 누군가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오른쪽은 작업실
행위고 왼쪽은 가스실 행위라는 것이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삶과 죽음으로
운명을 나누게 된다 10% 사람들은
왼편으로 분류되었다 병든 사람이나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목욕탕이라고
표시된 곳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
뒤에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특별히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의 간 장교가 내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건강하게 보이려고 똑바로
꽃꽃이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우리들은 가축 우리 같은 건물에 쑤셔
넣어졌다
거기에서 추위와 굶주림이 시달렸다
바닥에 눕기 커녕 쭈그리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우리가 받은 양식은
손바닥만한 빵 한개가 전부였다
오른편으로 분류된 우리들은 이곳에
있다 왼편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나중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멀리 굴뚝을 가르켰다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 가족들이
그곳으로 간 것이다 아마 지금쯤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이 수용소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가축우리 같은 방에서
기다리다가 진짜 샤워실로 보내졌다
우리에게는 이분이 주어졌고 몸에지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몸에 난 털까지
모조리 제거되었다 글자 그대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벌거벗은 실존
뿐이다 과연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감자들에게 모두
번호가 있었다 나에게는 910번이
주어졌다
914번 이것이 나의 이름이
존재 치였고 정성이었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에게 줄무니 수위가 입혀졌다
허수 아이에게나 입혀야 어울릴 것
같은 넉마 같은 옷이다 배급된 한벌의
옷은 반년 동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입었다 매일저녁 우리는
몸에 있는 일을 잡으면서 우리들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 있는이 몸뚱이
이제 정말로 송장이 되었구나 나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인간
살덩이를 모아놓은 거대한 무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철조망 속에
사람들로 박을 거리는 막사에 갇혀
있는 거대한 무리의 한 부분 그
구성원의 일부가 죽어서 몸뚱이가 썩기
시작하는 그 거대한 무리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곳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침상에서
잠을 잤다 한층에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두 장에 담요를 덮었다
그래서 우리는 옆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고 서로 몸을 꼭 붙인 채
비비면서 잠을 잤다 어떤 사람은 흑이
묻은 신발을 몰래 갖고 들어와서 베에
삼아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을 베고 잠을
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잠이 밀려왔다 비록 단 몇
시간 동안이지만 우리는 고통을 입고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 키의
말이 사실이냐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죽음의 수용소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라 수용소의 카포라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대인 중에서 선발된
카포는 마음껏 음식과 술 자유를
부여받은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은 단 하나 입니다
카포에 할당된 노동의 결과를 달성할
때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카포는 완장을 빼앗기고 다시
수감자 신세로 전락합니다 할당량을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카포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이었고
카포를 유지하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누군가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카포는 축복일까요
저주일까 혹시 우리가도 하는 것은이
세상에서 또 다른 카포가 되게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아주 조금 있거나 아예 없을 때에도
카포는 절대로 굽는 일이 없었다
카포는 오히려 수용소에 있을 때 가장
영양 섭취를 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이 사람들은 신수가 아주 하군
괜찮은 사람들처럼 보여 누가 알아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혜택을 받게
될지 수용소 에 오기 전에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랐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카포로 뽑혔고 기대했던
일을 잘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났다
그래서 카들은 같은 유대인들 이에도
불구하고 감시하는
병사들보다지 의원들보다 카포이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일단 카포가 되면
그들은 금세 낮지 대원들이 감시
병들을 닮아갔다 양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카포로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된
사람들이다 자기 목숨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이런 수 소의 구조로 인해
우리 중에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서이 수용소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이 수용소에서 고통을 겪으면
처음에는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육체적인 고통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의지가
완전히 소진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고
나면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오물을
버리러 가다가 똥물이 얼 튀어도 싫은
기색을 보일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인간의 존엄성 차 무감각해진다
동료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참아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가 그것이 일상이 되면
감정이 무뎌져서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다 12살의 소년이
병실에 실려왔다 그 소년은 눈속에서
여섯 시간 동안서 있으면서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다 의사는 집게로 시커멓게
썩은 살을 긁어냈다 그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관경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어떠한 고통이나 동정심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주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도 더 이상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무감각해진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 불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우리는 매일 구타를 당한다
그러나 정말 참기 힘든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이다 주먹질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같은 인간이 아닌
한 물건처럼 대하는 태도 마치 우리를
향해서 가축을 대하는듯한 행동을
경험하면 구타당하는 것보다 훨씬 참기
어려운 모멸감이 된다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분노는 육체적 학대나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심한
감에서 발생한다 우리를 견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멸감이이 책을 통해서 여러분들과
정말 나누고 싶은 내용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죽음의 수용소 같은
환경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빅터 프랭클이 경험한
현실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환경을 빅터 프랭클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의 신앙의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잘 알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작업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구령소리 들렸다 모자 서라는
구령이 떨어질 때 우리는 수용소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민첩하게 행진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발길질이
가해졌다 아무리 추워도 허락 없이
모자를 귀까지 눌러쓴 사람은 더 큰
벌을 받았다 나는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신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아프다는 내색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돌멩이를
밟고 웅덩이를 지나고
있었다를 의서 걸었다 빙판위를 걸으며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몇 마일을
걷는 동안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마누라들이 만약에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안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그때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생에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실을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순고한 목표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순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여전히 더할 라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생의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속에서 한 상에 잠겨 있나니 그리고
나는 이것을게 되었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다 인간은
저하게 주변 환경에 향을 받는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어떤가
수용소라는 특별한 상황에 있는
인간에게 과연 아무런 자유가 없는
것일까 나는 수용소에서의 험을 통해
강제수용소에서 사람이 자기 행의
선택권을 수 있다는 것을알 였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인
독립과 영적인 자유를 간직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한다
매일 매 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복종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결정은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 포기하고
환경에 노리개가 되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이 보이는
심리적인 반응은 어떤 물리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단순한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면 부족과 식량 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도스토 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은 내
고통이 가치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영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떠올리면 나는 스스키
말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의 결과물이라고
할 있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앗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우리에게는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얻는 인생의 목적이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소극적인
아름다움과 예술같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인생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련이 주는 의일 것이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에
빼놓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심지어 가장 참혹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렇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는다면 동물과
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도 존엄한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이
지낸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서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어떻게 우리는 환경에 맞설 수 있을까
수용소에 수감자들이 입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 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미래를 향한 인간의 정신
상태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수용소에서 보내는
성탄절부채춤이나 전염병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성탄절에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지났지만
희망은 사라지고 용기를 잃게 되자
절망감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사망의
직접적인 요인은 발진티푸스 영양실조
장티푸스이지만 사실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질 때 그들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를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들의 삶은 곧 파멸한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
생각해야 한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삶의 의미를
일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삶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하게 되고 그 반응은 다른 운명을
만든다 그러므로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아가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현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을 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회이다
수를 살아가는 수감자들에게이 생은
실적인 것이 아이 생각이야말로 리가
자신을 수 있는 일한 생이다 심지어가
살아서 그을 올이
없어보이는에도
이생은부터를
지켜주다에게을는지
명속 추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고 릴케가 실을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 말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우리는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말고 몰래
눈물을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다시
말해서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니체 말을
새겨본다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경험은이 세상에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한다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모든 생각
우리가 겪었던 고통과 시련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 속에서 용기 있게
직면하는 법을 배웠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환경이 우리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
그 존재가 죽은 사람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는 우리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생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환경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환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말 그리고 우리가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되는 시련이 있고 그리고 그
시련을 통해 우리는 평온한 환경이
결코 줄 수 없는 우리의 존엄성을
만들어 간다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시련을
견딘다는 것은 은 참 어렵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신앙이고 예술이고 유머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게 될
시련과 고통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혹하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견딜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신앙과 책과 예술과 유머를 통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될 시련에 맞서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빅터 프랭클의
책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댓글을
통해 들려 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역시 시련을이기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신앙 예술 유머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우리를 강제 수용소로
호송하는 열차의 창살 너머로 석양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알프스를 바라보았다
그때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절대로
삶과 자유의 대한 희망을 포기한
수감자들의 얼굴이라고 믿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치되다 했다 수용소에서 일할 때에도
우리는 종종 알프스 숲의 나무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숲은 우리가 대규모
비밀 군수품 제조공장을 짓는 동안에
동원되었던 지긋지긋한 숲이 말이다
죽도록 피곤한 몸이었지만 지는 하의
풍경을 라면서 군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울 수도 있다니 강제
수용소에서도 예술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처 있는 현실을 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을 하고 극을 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이 실제로 현실의
고통을 도움을 준다 비록 현실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극을 리게
느끼지만 예수를 해 깊 을받는 것은
주는 기괴하고 놀라운 측면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예술뿐만 아니라 유모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더
놀랄 것이다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다른 무기였다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할
때 실제 로 나는 옆에서 일하는
친구를 대상으로 유머 감각을
개발시키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자고 했다
이야기의 소재는 우리가 수용소에서
풀려나고 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기로 했다 그는 외과 의사로
큰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풀려난
후에 전에 일하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수용소에서 얻은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들려주어 그를 웃게 만들었다
수용소의 건축 공사장에서는 감독이이를
빨리 하라고 우리에게 고함을 질러댄다
빨리빨리 움직여 빨리 빨리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가 수술실에
들어가 큰 개복 수술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가 달려와서 외과
과장이 도착했다고 알려주면서 소리
치는 거야 빨리 빨리 움직여 빨리
빨리 때로는 다른 동료들은 미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수용소에서는 배식으로 묽은 수프를
받을 때 밑바닥까지 퍼주면 콩을 몇
알 더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강제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어느 날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자기가
풀려났다는 사실을 깜빡 입고는 그 집
안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밑바닥부터 퍼주세요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바라보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하는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다리는 결 죽음의 수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기
위해 꽃들이 발한 들판을지나 골를
걸었다 종가 하늘을
날아올랐고들의 노래소리가 들렸다 주
몇 마일 안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다 드넓은 돼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고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는
춰서 을 올다 그
다음을었다 그순간 나는 자신은 론이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한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비은
방에서 주님을 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습니다을 앉 이말을
되다는 것은 걸음걸음 다아을 얻은 진 것은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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